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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드포답사/국내

중명전/구(舊)러시아공사관 : 정동(3)



이번에는 마지막으로 을사조약이 이루어진 현장 덕수궁 중명전과 아관파천의 현장이었던 구(舊)러시아 공사관을 방문하도록 하겠습니다.



중명전은 1897년 황실도서관으로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본래 이름은 수옥헌(漱玉軒)이었지만 고종이 이곳에 거처를 하기 시작하면서 중명전으로 이름을 고치게 되었습니다. 중명전에서 일어난 가장 큰 사건은 바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일본이 강탈한 을사늑약입니다. 1905년 11월 18일 새벽에 일제는 군대를 동원하여 중명전을 침범하였고 고종과 대신들을 협박하여 강제로 조인하도록 한 사건이죠.


<덕수궁 중명전을 가기 위해서는 덕수궁 안이 아닌 정동극장 옆길로 들어가야 합니다> 


< 이 지역 또한 옛 덕수궁의 영역이나 일제가 점차 영역을 줄이면서 현재의 크기로 줄어들었습니다 >

 

<이제 중명전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 중명전 관람은 평일 오전에는 자유관람이나 평일 오후와 주말엔 인터넷 사전예약이 필요합니다 >

* 중명전 인터넷예약 : Http://www.deoksugung.go.kr


< 중명전 현판입니다 >


<중명전 1층. 2층은 현재 사무실과 세미나실로 사용하고 있어서 출입이 금지되고 있습니다>

 

< 중명전 바닥도 이렇게 보존하고 있습니다. 러시아풍이죠>


<을사늑약이 체결 된 것으로 알려진 방에는 을사늑약 사본을 볼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아관파천의 현장 옛 러시아 공사관입니다. 1895년 명성황후가 일본 낭인들에게 살해당한 을미사변을 경험한 고종은 일본에 대한 두려움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일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한으로 선택한 것이 바로 일본과 맞설 수 있는 강대국에게 기대는 것, 그 중 고종이 택한 것은 바로 러시아였습니다. 1896년 고종은 밤을 틈타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을 해 근 1년간 기거한 사건이 바로 아관파천입니다.  


가는 길에 볼 수 있는 것은 불어를 가르치던 관립법어학교의 터입니다. 

옛 프랑스 공사관이 자리하고 있던 곳인데, 프랑스 공사관의 건물은 현재 남아있지 않습니다.

  

<현재도 이 곳에는 대사관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앞의 건물은 캐나다 대사관>


<현재 옛 러시아공사관 건물은 존재하지 않고 공원만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자리는 정동수녀원이 자리잡기도 했습니다>



러시아 공사관은 현재 탑만 남아있습니다. 정동의 공사관 중 가장 규모가 크고 높은 위치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지금도 이곳에 올라가면 주변 지역을 모두 살필 수 있죠. 여담입니다만 대한민국이 다시 러시아와 수교를 하게 되었을 때 이 곳을 대사관 위치로 삼고자 했지만 바로 옆에 있던 미국대사관저를 생각해 미국이 강력한 반대의사를 타진했고, 결국 러시아 대사관은 다른 곳에 위치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현재 러시아 대사관은 정동제일교회 옆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소개한 장소 이외에도 정동은 많은 근대문화유적들이 자리잡고 있는 곳입니다. 개화기 조선의 개화의 바람과 서구세력의 보이지 않는 힘의 관계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장소라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