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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드포답사/국내

정동길/서울시립미술관 : 정동(1)

 

이번에는 서울의 중심부 그 중에서도 덕수궁 주변 정동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정동은 도심임에도 불구하고 한적하고 ㅡ 아 물론 주말엔 사람 많습니다 ㅡ 아기자기한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어서 선생님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소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그런 이미지와는 달리 정동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매우 버라이어티한 장소였습니다. 그럼 이제 정동길을 따라 한국 근·현대사의 기억을 되뇌어보도록 합시다.

 

 

정동은 서울특별시 중구에 위치하고 있으며 덕수궁 주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개항기 때 서울에 주재하고 있던 외국 공사관들이 위치하고 있던 곳입니다. ㅡ 현재도 많은 대사관이 이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ㅡ 그렇기 때문에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한 아관파천(1896) 이후에 덕수궁에 머물렀던 이유 중 하나도 바로 덕수궁 주변의 외국 공사들의 힘을 빌려 일본에 대항하고자 했던 생각도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 정동에는 특별한 모임이 있었습니다. 바로 '정동구락부(貞洞俱樂部)'라는 모임인데요, 구락부라는 뜻은 영어로 클럽(Club)을 한자로 표기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정동클럽이죠. 이 모임은 조선에 와 있던 외국인들의 일종의 사교모임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실상 정동구락부의 멤버는 조선에 있는 외국 공사들이 주요 멤버였습니다. 선교사였던 아펜젤러나 언더우드도 이 모임의 일원이었구요. 특이한 점이 있다면 이 정동구락부에서는 일본인의 가입을 배제시켰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정동에 있던 손탁호텔에서 많은 모임을 가졌다고 합니다.

 

또한 이 정동구락부에 윤치호, 이상재, 이완용 ㅡ 이때 이완용은 친미파였습니다. 박쥐같은 사람이죠 ㅡ 등일부 조선인도 가입을 했는데, 이들을 중심으로 하나의 정치 집단이 형성됩니다. 그것이 바로 '정동파'입니다. 정동파는 반일적 성향을 띄었고 고종이 아관파천을 하게 된 것도 이 정동파의 움직임이 있었다 전해집니다.

 

출처 : 다음 지도

<오늘은 대략 이런 경로로 정동을 돌아다녀볼까 합니다>

 

<정동길의 출발은 바로 덕수궁의 정문, 대한문(大漢門)에서 시작합니다>

 

<정동길 입구입니다.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걸어가면 됩니다>

 

 

그런데 덕수궁 돌담길에는 슬픈 전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덕수궁 돌담길을 연인이 걷게 된데면 그 연인은 헤어진다는 속설인데요. 궁궐 여인들의 한이 서려서 그렇다는 이야기도 있고, 풍수지리 상으로 정동길은 물이 여러 갈래로 흩어지는 형상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이야기도 있는데요, 사실 이 지역에 서울가정법원이 자리하고 있었기에 ㅡ 지금 가정법원은 서초구에 있습니다 ㅡ 이혼하는 부부들이 다니던 길이었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근데 뭐 다들 잘 살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아요!

 

<예전엔 덕수궁 돌담길에 그림 세워놓고 파시던 분이 있었는데 안보이시네요>

 

<정동길의 중심, 정동제일교회 앞입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바로 이곳에 있습니다>

 

정동길에서 제일 먼저 만나는 곳은 바로 서울시립미술관입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일제강점기였던 1928년 경성재판소 건물로, 이전에는 조선 말 평리원(한성재판소)이 있던 자리였습니다. 광복 이후 1995년까지 대법원으로 사용되다가 대법원이 서초동으로 이사하게 되면서 서울시립미술관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건물의 구조적 문제와 너무 노화가 된 나머지, 건물의 파사드(정면벽판)만 남기고 철거하여 새 건물을 짓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파사드만 남겨져 있는 옛 대법원 건물입니니다>